의료기기 컨설팅회사에 취업하게 되면 시도때도 없이 오는 전화에 노이로제에 걸리기가 쉽습니다.
제가 일했던 컨설팅회사에는 아래와 같이 흔히 볼 수 있는 사내 유선전화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단기 알바나 계약직같은 것들을 했을 때, 전화 예절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기억이 납니다. '~~부서 김똘똘입니다.', '~~님으로 전화 돌려드리겠습니다.', '~~전화 대신받았습니다. 김똘똘입니다.' 등등 멘트를 기억하고 연습해서 혼나지 않으려고 애쓴 경험이 있는데요, 유선전화가 없으니 이러한 복잡한 일들이 일어날 일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업무와 관련된 전화도 무조건 개인전화로 전화를 걸고 받고 했는데요, 문제는 업무시간 이외에 오는 전화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퇴근을 했는데 고객업체에서 개인전화로 전화가 오기도 하고, 심지어 주말에 대뜸 연락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퇴근해서 집에 가고 있는데 PM한테 연락와서 하는 말이, '당장 급한데 집에서 ~~좀 처리해줄 수 있냐?' 라던지, 또는 집에 도착해서 쉬고 있는데 '똘똘아 그때 ~~한 업무 어떻게 처리했었지?' 라던지 등등...솔직히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닌데 왜 자기 생각날 때 전화해서 직원들을 귀찮게 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됐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전화가 정말 뜬금없이,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옵니다. 전화를 한 번 하면 짧게는 3~4분, 길게는 한 시간 넘게 통화한 적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인허가 문서 작성 관련해서 물어볼게 있어서 연락을 주는 경우입니다. 저는 전화를 자주 하는게 업무흐름상 좋지 않고, 또 말로 하는 것은 효율적이지가 않아서 이메일을 잘 활용하는 편입니다. 제가 인허가 문서 작성하면서 필요하거나 궁금한 사항을 이메일로 주절주절 작성해서 보내면, 10 중 4 은 메일로 회신이 잘 오는 편이었습니다. 문제는 10 중 6 은 꼭 궁금한 점에 대해서 전화로 답변을 줍니다. 특히 나이가 많은 차부장급 담당자들은 전화를 선호하는 편인 것 같았습니다. 아마 전화는 기록이 남지 않아서 책임의 소지가 불분명해서 그런걸까요? 전화 한 번 받으면 최소 10분 이상 통화하게 되고, 도중에 업무흐름이 끊겨서 다시 돌아오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전화만 받다보면 하루의 절반이 날라가기도 했습니다.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항상 전화 오는 것을 예의 주시하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기간에 쫓기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면 시험검사나 기술문서 심사 시 시험소, 식약처, 인증기관으로부터 전화로 연락이 자주 옵니다. 그런데 시험소나 인증기관으로부터 온 연락에 즉각적으로 답변을 할 수 없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을 물어본다던지, 아니면 제가 모르는 제품의 사양같은 것들을 물어보면 또 고객업체에 전화해서 확인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깁니다. 근데 만약 고객업체에서 연락을 안받는다면? 중간에 낑긴 저는 전화나 이메일을 계속해서 확인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다가 업무처리 타이밍을 놓치면 PM한테 혼나거나, 고객업체로부터 클레임이 들어옵니다.
가장 최악인 것은, 밑도 끝도 없는 문의, 요청 전화였습니다. 프로젝트와 전혀 무관한 부분에서 고객사들의 인허가 질문을 듣고 있자면 정말 화가 치밀었습니다. 고객사에서는 '이 간단한거 솔직히 별것도 아니잖아? 답변해주는데 1~2분이면 될텐데, 그것도 못해줘? 우리가 컨설팅에 쓴 돈이 얼만데?' 라는 생각으로 전화를 했겠지만, 물어보는 것들이 항상 새롭고 특히 저같은 저연차 직원에게는 감당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확인해보고 연락드릴게요' 라고 답변하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 정리하면 또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또 가끔은 프로젝트와 상관없는 문서검토요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미용기기의 비임상 성능시험성적서 내용 좀 확인해줄 있냐는 요청을 전화로 받았는데, 제가 맡은 프로젝트의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요청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 성적서에 다 나와있으니깐 확인해보시면 돼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영어를 잘 못해서 모르겠어요 ㅜㅜ' 라는 실무자의 답변... 도대체 영어를 못하시는데 어떻게 FDA, 유럽 RA업무를 맡고 계신가요??;;
이 일을 하다 보면 개인전화로 정말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의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겹치는 요청/문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PM이 고객사와 프로젝트 실무자 사이에서 잘 조율을 해야하는데, PM은 항상 이런식입니다.
'그런건 잘 봐서 너가 답변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너가 잘 답변해줘. 만약에 애매하면 나한테 항상 물어보고. 알았지?'
매번 민원 업무에 시달리는 인증기관, 식약처 심사원분들이 저는 항상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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