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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8 - [의료기기 인허가/정보글] - 의료기기 RA 취업경험 5 - 컨설팅회사 B (인턴)
의료기기 RA 취업경험 5 - 컨설팅회사 B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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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사 미팅을 다녀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정규직에 전환이 되었습니다. 인턴 때 받았던 급여 (초봉의 80%) 에서 정상적인 급여를 받으니 상당히 기분이 좋았고, 무엇보다도 내일채움공제 2년형에 가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2년형 (1600만원) 과 3년형 (3000만원) 이 있었는데 3년형 가입인원이 모두 선발되어서 2년형으로 가입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였습니다. 내일채움공제의 악명을 생각해본다면, 하늘이 주신 감사한 기회였던 것이였습니다.
정직원 전환 때에 '안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솔직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기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딱히 밉보일 일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나름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저를 인턴기간만 채용했다면 코딱지만한, 인력 한 명이 아쉬운 회사 입장에서 극심한 손해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직원 전환 때 회사 대표님과의 면접에서 아래와 같이 그냥 평이한 말만 오갔던 것 같습니다.
회사 생활은 어떠냐? 일은 할 만하니?
네! 저번에 미팅 다녀오고 본격적으로 컨설턴트로 일을 경험해봤는데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지? 여지껏 한거는 시작에 불과해.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해
잘 할 수 있겠어? 그동안 뭐 힘들거나 어려운 거는 없었어?
아 넵...힘든거는 일 할때 모르는게 많고 고객사에서 연락오면 모르는 거를 자꾸 물어보고 하는게
조금 부담되기도 하고...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진행해야 하는데 처음 해보는 거라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는게 어려웠습니다.
모르는게 당연하지. 그리고 모르는거 있으면 PM한테 물어보고 하면 되잖아.
그러라고 PM있는거지 안그래? 너무 부담갖지는 말고, 모르는거 있으면 항상 물어봐
그리고 나도 일 시작할 때에는 모르는거 천지고 일은 해야하고 그래서
심사원들 바짓가랑이 붙잡고 물어보고 그랬어 임마
네 알겠습니다...
(아 그렇구나 원래 그러면서 배우는거구나)
임원들이 3개월동안 지켜봐왔는데,
열심히 해줘서 고맙고 앞으로 우리 회사에서 같이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판단했어.
다음 달부터는 인턴 아니고 이제 정직원으로 정식 채용해서 일하는거니깐
마음 단단히 먹고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열심히 업무에 임해줬으면 좋겠다.
(ㅜㅜ)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면담 이후에 저는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습니다!...라기 보다는 그냥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사실 '이런 작은 기업에서조차 정직원 전환이 안된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직원이 된 이후 제 통장에 찍힌 인상된 급여와 회사에서 소소하게나마 지원해주는 복지제도는 잠시나마 저를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회사욕을 한들, 저는 회사 덕분에 천만원이 넘는 학자금대출을 전부 상환하고 제 자신의 계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직원 전환이 된 이후 저는 약 2년동안 회사에서 근무하였습니다. 대략 10 개의 고객업체를 PM의 지시 아래 담당하였고, 세부 프로젝트로는 대략 20개 정도 맡았던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공부도 많이 했고, 또 집에서도 틈틈히 규격, 가이드라인 읽는 등 자습하기도 했습니다. ISO 10993 이니, IEC 60601-1 이니 뭐니 해서 규격도 참 많이 영어로 읽었고, 식약처, FDA, CE MDD, MDR 가이드라인도 읽었습니다. 규정이 자꾸 바뀌다 보니 매번 새로운 규격과 지침을 따라가야 했고, 그걸 대응하기 위해서 매번 양식을 뜯어 고치기도 하고 했습니다. 회사에서 10시 넘어서 퇴근한 적도 종종 있었고, 주말에 집에서 남은 업무를 처리한 적도 있었습니다. 매번 열정가득한 순간이였고, 그만큼 열심히 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싶지만...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도대체 뭘 위해서 그랬나 싶습니다. 이 일을 계속하지 않을 거를 알았다면, 저는 그렇게까지 열심히는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만 열심히 해서 크게 미련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시 돌아와서, 제가 정직원이 된 이후 회사에서는 신규 프로젝트(일감)를 계속해서 정직원으로 전환된 직원들에게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젝트 1~2개 맡았을 때야 뭐 아무생각없이 '우와 새로운 일감이네! 나를 믿어주시니 일을 주시는거겠지? 앞으로 너무 기대된다! 열심히 하자!' 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담당 프로젝트가 5~6개가 되니 점점 숨이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개별 프로젝트가 서로 관련이 있고 회사의 노하우가 있는 것들이였다면 부담없이 했겠지만, 물어오는 프로젝트는 매번 생소한 품목에...회사에서는 해본 경험이 없는 제품. 완전 답이 없는 상황의 연속이였습니다.
앞선 글에서 저는 체지방측정기 업체의 국내 인허가를 담당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사실 국내 인허가 하나를 받기 위해서도 준비해야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특히 첫 허가라면 시험검사에 필요한 문서준비와 기술문서 심사에 더불어, 제조업허가 준비도 해야하고, 제조시설에 대한 GMP 준비도 병행해야 합니다. 즉, 한 프로젝트를 쪼개자면 4개의 세분화된 프로젝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허가 취득'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4가지의 세부 프로젝트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고, 대게는 병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동시에 신경써야 할 부분이 4가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좋은 PM이라면 실무담당직원들에게 업무를 과도하게 밀어붙이지 않겠지만, 제가 있었던 회사의 PM은 항상 일 폭탄을 주었습니다. 제가 실무 5년차였으면 모르겠지만, 1~2년차에 그렇게 푸시하는 거는 다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선임직원들은 해왔으니 너도 해야한다. 나는 동시에 100개 맡아서 한다. 니가 지금 하고 있는 업무는 나에 비하면 아직 별 것도 아니다.' 라는 논리로 PM은 저에게 재직기간 상당한 압박을 해왔습니다.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난 뒤 고객사 실무담당자들에게 '그동안 잘 진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다, 저는 인허가 컨설턴트로서 적잖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평소에는 고객사로부터 질의전화가 엄청나게 많이 왔었는데, 대부분은 프로젝트의 진행범위와는 상관없는 인허가 관련 질문을 많이 물어보셨습니다. 솔직히 '그 부분은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하고 끊으면 그만이지만, 저는 나름 컨설턴트로서 고객사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한 것이 자존심상하기도 했고 쪽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음 그 부분은 한 번 제가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라고 말씀드리고, 관련자료 확인하고 이해한 뒤 다시 연락드려서 설명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깐 고객업체 실무담당자분들이 개인적으로 기프티콘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집에 늦게 가는 경우도 자주 있었지만요.
2년이 조금 넘도록 의료기기컨설팅회사에서 일하면서 느낀점은, '뭘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했나?' 입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다른 입사 동기들보다 열심히 한 점은 분명합니다. 한 시간이 넘는 출퇴근 길에서 저는 업무관련 공부를 했고, 퇴근 이후에도 종종 자기계발에 힘썼습니다. 회사 출근해서는 최대한 고객업체에서 원하는 대로 맞춰주고자 노력했고, 직장동료들이 궁금해 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것들이 있을 때마다 마치 저의 일인 것 마냥 도와줬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이루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업무 태도에 대한 대표님의 평가도 그리 좋지는 못했구요. 저는 저대로 지쳐서 회사에서 도망치듯이 나와버렸네요.
앞으로도 제가 잠시 몸담았던 컨설팅 회사 흉은 계속 보겠지만, 그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흑역사이거나 시간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회사에서 서류작성하는 방법, 고객응대방법, 자신감, 회사생활 등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성적인 나의 성격상 '의료기기 인허가 컨설턴트' 는 좋은 직업이 아닌 것 같다. 서류작업이 지루하지 않으시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MBTI로 따지면 ESTJ 같은 분들은 컨설팅 업무를 잘 할 것 같다.' 라는 것이 제 최종 결론입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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