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년 8 월은 제가 RA 전문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달이였습니다. 그리고 엄청 빠르게 그 발을 용암 구덩이에서 회수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첫 출근 날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출근시간 9시보다 무려 30분 일찍 회사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일찍 온 나머지 제가 제일 먼저 도착해서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았거든요. 문 앞에서 서성거리면서 두근두근해 한지 얼마 안 있어 직원 한 분이 오셨습니다. 저보고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묻더군요... 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ㅎㅎ...
회사에 빈자리에 앉아 다른 분들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9시가 되니 대부분 출근을 하셨습니다. 4년도 더 된 기억이라 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는 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네요. 중요한 일은 저에게 안시켰던 것 같습니다. 인턴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서류철에 부칠 라벨을 프린터로 출력해서 부치는거랑, 그리고 의료기기로 보이는 박스를 나르는 것도 했었습니다. 컨설팅회사들이 의료기기 수입등록 대행업무를 많이 하는데, 아마 그거랑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회사에서 거의 유일한 남자였기때문에 저를 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막내니깐 회사오면 회사 싱크대에 쌓여있는 컵 설거지를 저보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 그런거는 시키면 얼마든지 해드려야죠.
'그거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 앞으로 똘똘씨는 사람이 말을 하면 잘 들어야겠어.'
사장님이 시킨 일을 하고 사장실로 들어가서 다 했다고 하고 검사를 받으니 위와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신입직원 기죽이기를 하시려는 모양입니다.
'사장님 어떻게 하는건지 똑바로 안알려주셨잖아요 ㅡㅡ 그거 그냥 쉬운거니깐 일단은 해보면 된다고 하셨는데, 저 한 번도 안해봤는데요?'
라고 당연히 말을 못했습니다. '네...죄송함다' 이러고 억울한채로 사장실 밖을 나왔습니다. 이 이후에도 맘에 안들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퇴근을 안시켜주더군요. 신입직원이면 첫출근날은 보통 빨리 보내주지 않나요? 그때 한 시간 야근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근로계약같서같은 것은 작성하지 않았구요.
둘째날에도 저는 출근을 했습니다. 제가 할 일없이 회사 컴퓨터로 의료기기법이나 가이드라인 보고 있으니깐 썩 맘에 들지는 않았나봅니다. 그 회사의 고문이라는 분이 자기가 과제를 줄테니 저보고 이번달 중으로 그거 준비해서 발표하라고 하셨습니다. 과제 내용은 '제가 대학 때 배운 전공과목 내용 중 하나 아무거나'로 해서, 자료 정리하고 ppt로 발표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대체 저 과제가 의료기기 인허가 컨설팅이랑은 무슨 상관이였을까요? 그때 당시에도 진짜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지만, 시키는데 뭐 별 수 있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하고 엄청 걱정했습니다.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고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때부터 이거는 좀 아닌 것 같아서 회사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의료기기 인허가업무를 배우려고, 그리고 RA로 일을 시작할려고 왔는데 의료기기 박스 나르고 있고 이상한 발표준비까지 하라고 하니 계속 여기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인턴 출근 셋째날 오후 4시쯤, 사장님이 저에게 일을 하나 시켰습니다. 2시간 후면 퇴근인데, 저보고 의료기기 전자민원창구에 민원접수를 해달라고 하시더군요. 전자민원창구는 RA 교육 때 여러번 들어가보긴 했는데, 그 당시에 제가 직접 민원을 접수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사장님이 자기가 파일을 줄테니 그거 내용 보고 저보고 민원을 등록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참 기가 막혔는데, 제가 받은 파일은 4등급 의료기기 STED 기술문서와 기타 첨부자료였습니다. 그것도 제출이 쉽도록 파일 패키징이 되어 있던 것도 아니였습니다. 사장님은 충분히 제가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셨을까요? RA 교육 때 STED가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는 것만 배웠지 STED 구조는 어떻고 내용은 뭐가 들어가고 요구사항은 뭐고, 이런거는 자세히 배우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거만 어떻게든 해결하고 오늘 일 못하겠다고 얘기를 해야겠다고. 4시에 일 받아서 끙끙대다가 6시쯤에 다른 직원분이 도와주셨습니다. '똘똘님이 받은거는 4등급 STED 문서인데, 민원 등록할려면 ~~해야 한다.' 라고 그걸 그 자리에서 설명을 해주셨지만, 소 귀에 경읽기였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이 자리를 탈출할 마음이였거든요. 그분의 도움 끝에 7시가 넘어서야 저는 집에 갈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장님 시키신 일은 다 했습니다....저기 드릴 말씀이 있는데, 제 적성이랑 맞지 않는 것 같아 오늘까지만 일을 하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속이 너무 후련했습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3일 일한 것에 대해서는 급여를 주장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얻은거라곤 쓰디쓴 사회경험과 '3일치 점심식사' 가 전부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빨리 잘 결정해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 참고 그 회사에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싫네요 ㅋㅋㅋ
이 일 이후로, 저는 약 6개월동안 RA와는 동떨어진 분야인 '대학교' 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원래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청년일자리사업과 관련된 좋은 기회가 있어서 잠깐 숨을 돌리고 다시 기회를 노릴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2019년 초에 다시 의료기기 컨설팅회사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훨씬 좋은 환경과 급여조건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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