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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RA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에 고려해볼 사항

똘똘한김똘똘 2022. 8. 1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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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떻게 하다가 의료기기 인허가 직무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저는 '법률을 다루고, 그러기 때문에 뭔가 전문적이고 멋있어 보일 것 같다.' 라는 생각으로 진입을 했었습니다.

 

사실 저는 연구개발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연구원이 되고 싶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 장래희망은 연구원이였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진학하기가 어려웠고, 따라서 대학교 졸업 이후에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했었습니다.

 

구직당시 의료기기 연구개발 분야는 학사학위로 취업이 쉽지 않았고, 영업,마케팅 직무는 내성적인 저한테는 싫었으며, 품질관리는 서울에 직장이 없어서 별로였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RA라는 직무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좋은 기회에 RA 교육 1개월 과정을 받은 뒤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료기기 인허가 컨설턴트로 취업을 하고 난 뒤, 무릇 의료기기 인허가 전문가라면 의료기기 인허가와 관련된 다양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식을 기반으로 회사 관계자들에게 '요청' 이나 '가이드'를 하면서 회사가 올바른 규정을 준수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RA 담당자의 책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의료기기 인허가 전문가가 가장 필요한 역량은 '회사 내부의 이해관계자들이 규정을 따르도록 만들 수 있는 힘' 이라고 생각합니다. '규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은 이것을 달성하게 해줄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합니다. 규정과 관련 지식만 많이 안다고 뛰어난 RA 전문가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불행히도 저는 그 '많이 알면 장땡'이라는 착각 속에서 업무를 처리해왔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랑 대화하고 어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였고, 그래서 회의나 대화로 해결하기 보다는 가급적이면 이메일이나 전화로 업무를 처리하곤 했습니다.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회의를 잡지 않았으며, 고객업체 담당자들과 사적인 대화나 만남또한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규정은 정해져 있고, 규정은 따르라고 있는거니깐 내가 많이 알아서 담당자들한테 시키면 되겠지?' 라는 태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습니다. 물론 많이 아는 것이 업무에 큰 도움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업무의 효율은 높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걸 왜 해야 돼? 예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다른 회사는 안하는 것 같은데 왜 해야 돼?' 따위의 의문에 대해서 적절히 해소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의료기기 인허가 업무는 의료기기 RA 담당자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연구개발, 영업마케팅, 품질, 생산 등 다양한 부서의 업무와 얽혀있고, RA 업무의 상당 부분은 협조요청이나 개선요청 등 타부서의 본업과는 거리가 있는 업무를 던져주게 됩니다. 타부서에서 봤을 때 의료기기법에서 요구하는 것은 '의료기기 산업'에서 요구하는 특수한 요구사항일 뿐입니다. R&D부서는 신제품의 연구와 개발을, 영업마케팅은 제품의 판매와 촉진을, 품질부서에는 품질관리를, 생산부서에서는 일일, 월간, 연간 생산 계획에 맞춰 생산을 할 뿐입니다. RA부서에서 요청하는 '규정과 형식에 따른' 연구 개발문서 작성, 품질문서 작성, 제조기록작성, 판매 후 정보 (고객만족도, A/S 등) 수집 따위의 일은 '하면 좋고', '안해도 그만' 이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누군가 '의료기기 회사들은 GMP가 있으니깐 개별 부서에서 프로세스에 따라 알아서 잘 하지 않을까요?' 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천만에요. GMP는 '품질시스템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사항에 불과합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GMP 심사 전에 잠깐 빡세게 준비해서 심사 대응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회사들의 GMP 문서에 적힌 내용의 상당부분이 심사 전 급조된 내용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 정직한 회사들도 꽤 있겠지만, 대기업이건, 매출액이 수천억원이건 간에 의료기기 필드에서 '규정 준수' 에 대한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RA담당자들의 현실은, 의외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묘히 넘나들면서 업무를 하게 됩니다. 규정을 전부 따를 능력과 인원도 없고, 자본도 부족하기 때문에 규정을 안따르고 그냥 넘어가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걸리면 그때 가서 하자'. 하지만 점점 가면 갈 수록 '그때 가서 하기' 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재수없으면 RA 담당자가 덤터기를 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영업정지를 당할 수도 있고, 시험을 다시해야할 수도 있으며, GMP 인증취소, 품목허가 취소 등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마다 RA담당자가 가장 1순위 책임대상이 되지요.

 

RA담당자에게 '내가 책임지지 않게 하면서 다른 사람이 책임질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의사소통 능력' 이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과장, 부장들에게도 싫은 소리할 수 있고, 필요하면 싸울 수 있는 깡따구. 그리고 그러면서도 인간적으로 싫지 않게끔 보이면서 이 사람들과 잘 어울릴 줄 아는' 인싸력이 다소 필요한 직군이 바로 RA직군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