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인허가/정보글

의료기기 RA 커리어 시작으로 컨설팅회사를 비추하는 이유 - 첫번째

똘똘한김똘똘 2022. 5. 1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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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8 - [의료기기 인허가/정보글] - 의료기기 RA 커리어 시작으로 컨설팅회사를 추천하는 이유

 

의료기기 RA 커리어 시작으로 컨설팅회사를 추천하는 이유

의료기기 RA로 커리어를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게 되면, 시작점에 따라 크게 3가지의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의료기기 제조업체 RA 신입으로 취업 의료기기 수입업체 RA 신입으로 취업 의료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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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는 의료기기 컨설팅회사 신입으로 가야 하는 3가지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의료기기 RA 신입으로 컨설팅 회사를 가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의료기기 RA직무라는 게 잘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생소하기도 하고, 약간 별거 아닌 업무 하는 사람들로 치부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인식이 그렇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쪽 분야에 발을 담근 순간, 사람에 따라서는 불지옥을 맛볼 수 있는 업무이기도 합니다. 컴플라이언스(규제) 준수 및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가장 최선방부서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국내 의료기기 업계에 해외 선진국 수준의 까다로운 법적 요구사항들을 던져주고 이를 따르라고 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여기에 더불어 최근에는 유럽의 의료기기법 개정 (MDD = > MDR)으로 인해 많은 제조업체들이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이면 아시겠지만,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법적 요구사항들이 자주 바뀌면 바뀔수록 가장 이득을 보는 분야는 인허가 컨설팅 회사들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의료기기 업체들은 중소기업이고, 이런 중소기업들의 규모와 시스템 측면에서 다변하는 법적 요구사항을 준수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업체들은 '컴플라이언스 준수'를 컨설팅업체에 외주 맡겨 위험을 분산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 컨설팅 업체 사장님들은 쾌재를 부르고 계실 듯합니다. 안 그래도 코로나라서 진단키트니 뭐니 하면서 신규 의료기기 인허가 수요가 많이 늘었는데, MDR 컨설팅 비용으로는 최소 1억부터 시작이라는 말도 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일이 많고 수익이 높아진다는 게 과연 컨설팅 직원들에게도 좋은 것일까요? 여러분이 앞으로 컨실팅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겪게 되는 일을 직원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격 의료기기 컨설팅회사에 신입으로 취업하면 느끼게 될 단점

 

단점 1. 칼퇴 없음 (집에 못 감)

이 부분은 케바케이긴 합니만, 대부분의 의료기기 인허가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업무량은 상당히 빡센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RA하시는 분들 중에서 잘 모르시는 분들은 아래처럼 말하곤 합니다.

 


"컨설팅 회사 직원들 보면 별거 해주지도 않으면서 돈 엄청 챙겨가더만. 문서도 사실상 우리가 다 써주고, 걔네들은 검토만 해주던데, 그러면 사실 일 별로 없는 거 아닌가요?"

 

 

이것도 사실 컨설팅 회사에서 일 어떻게 하기 나름이긴 합니만, 컨설팅 회사 직원들은 대부분 출근하면 근무 루틴이 이렇습니다. 

 

  1. 이메일 확인 
    - 고객업체에서 요청사항이나 피드백받은 경우 대응
    - 심사기관에서 보완 요청받거나 또는 기타 피드백받은 내용이 있는 경우 대응

  2. 전화통화
    - 이메일로 확인요청을 드렸으나 확인을 안 하는 경우
    - 사안이 급박하여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경우
    - 이메일로 보내고 추가 설명이 필요한 경우
    - 기타 문의사항이 있는 경우

  3. 문서작성
    - 담당 프로젝트별로 우선순위가 높은 순으로 인허가 시 필요한 문서 작성 (기술문서 등)
    - 번역이 필요한 경우 문서 번역
    - 고객사에서 양식 보내달라고 요청한 경우 양식 작성

  4. 규격 및 가이드라인 확인
    - 보완사항에서 언급한 규격이나 가이드라인이 명시되어 있는 경우 구매 및 확인
    - 사전에 규격이나 가이드라인 파악이 필요한 경우

  5. 법적 요구사항 변경내용 확인
    - 중요한 변경사항이 있는 경우 확인 및 공유

  6. 외근 및 외부업체 미팅
    - 외부업체 미팅이 있는 경우 외근
    - 외부업체까지 대중교통/운전해서 방문
     
  7. 기타 회사 내부 업무
    - 잡다한 업무들 (교육보고서 작성, 외근/출장보고서 결재 등)

  8. 외부 교육 있는 경우 교육 수강
    - 의료기기산업협회나 식약처, 또는 인증기관 교육 수강

 

 

여기서 1, 2, 3번 업무는 매일 있는 업무이고, 4번은 상당히 자주 있는 업무이며, 6번은 때에 따라서 종종 있는 업무입니다. 5, 7, 8번 업무는 한 달에 1~3 회 정도 하게 됩니다. 업무만 봤을 때는 평이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업무들이 순서대로 발생하는 업무들이 아닌 것이 야근을 유발하는 문제가 됩니다. 아래와 같은 상황 때문에 보통 야근을 하게 됩니다.

  1. 고객업체 A 에 자료 요청 이메일을 보냈는 데 3~4일이 지나도 답변이 없음. 답변이 없어서 전화 시도
  2. 전화를 걸었더니 내부 미팅 중이라서 조금 있다가 연락하겠다고 함.
  3. 다른 업체 B의 기술문서 작성 초안을 전달해야 해서 기술문서 작성
  4. 기술문서 작성 중에 메일을 확인하니 타업체 C의 기술문서 심사 보완 공문이 날아와 있음
  5. 보완 내용을 확인해보니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있어서 심사 담당자에게 전화 걸어 보완내용 문의
  6. 12시가 넘어서 점심 식사하러 감
  7. C업체 보완사항 내용 정리하고 고객업체 담당자에게 전달 및 전화
  8. 담당 PM에게 C업체의 보완내용에 대해 보고하는 중에 2에서 전화했던 A업체 담당자에게 연락 옴
  9. A업체 담당자 왈 '회사 제품 구성품이 일부 변경될 것 같은데, 이대로 진행해도 되냐?' 문의 옴. 변경 부분이 뭐냐고 물어보니 같이 제공되는 구성품이 추가된다고 함. 전화로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으니 담당자한테 구성품이 뭔지 메일로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요청.
  10. 점심시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다른 업체 D업체에게 연락이 왔는데, 뜬금없이 프로젝트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은 사안에 대해서 물어봄. 대충 답변하려고 했는데 구체적인 자료나 방법을 알 수 있냐고 물어보길래 담당 PM에게 해당 내용 전달
  11. PM 왈 '그런 거는 추가 계약을 하고 물어보던가 해야지 우리가 뭐 땅 파서 장사하나? 네가 대충 설명해줄 수 있는 부분만 알려줘'라는 알쏭달쏭한 얘기를 함.
  12. 결국 D업체 담당자가 물어본 내용에 대해서 한참을 찾아보고 방법까지 다 알려주니 벌써 4시.
  13. B업체 기술문서 초안 작성하다가 보니 제품 성능시험 내용 필요해서 B업체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성능시험 항목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함. 설상가상으로 B업체 담당자가 소프트웨어 밸리데이션 문서을 전달해줬는데 내용도 누락되어 있고 완전 엉망으로 작성해줘서 수정해야 한다고 하니 자기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퇴사해서 자기(RA담당자)가 썼다고 함. 
  14. 결국 B업체에 맞는 가이드라인이랑 규격 찾아서 성능시험 항목 설정해주고, 시험방법 ~~게 해서 쓰면 되니깐 함 보시고 확인해보라고 전달. 소프트웨어 밸리데이션은 내일 내용 손보기로 함. 벌써 6시
  15. 다시 B업체 기술문서 작성하는 도중 사용자 매뉴얼이랑 기술문서 내용이랑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전화하려고 했으나 퇴근시간이 지나서 메일로 정리 후 전송
  16. 6시가 넘어서 저녁 먹으러 감
  17. 저녁 먹고 B업체 기술문서 작성. 쓰고 보니 벌써 8시 
  18. 퇴근 

 

 

대략 이런 식입니다. 설명을 위해서 A, B, C, D 업체만 기재했지만, 한 업체에 프로젝트가 2~3개가 딸려있기도 하고 7개의 고객사를 상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위에서 서술한 일들이 업체와 프로젝트만 바뀌어서 진행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만약 외근이나 교육이 있다면 보통 점심 전이나 후, 또는 하루 일정 전체가 외근으로 변경됩니다. 외근/교육이 있다면 그 시간 동안은 사실상 일을 못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술문서만 작성하거나 전화/메일 응대만 하면 참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일이 그렇게 원하는 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이 없습니다. 불분명한 프로젝트 계약사항이나 PM의 지시는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의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업무들까지 하게 만듭니다. 개선되면 좋겠지만 컨설팅회사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에 자신이 해외 인허가를 맡고 있다? 이러면 상황은 더 좋지 않습니다. 한 번은 제가 FDA의 510(k) 인허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정식 보완 공문 (Additional Information Request)을 보내기 전에 FDA 심사관들은 문서 형식이 맞지 않거나 전형적인 형식에서 누락된 부분 (예를 들면 510(k) Summary에서 빠진 내용이 있는 경우) 이 있으면 이메일로 즉각 보완 요청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보완기간을 굉장히 촉박하게 주는 상황입니다. 메일은 5월 10일 오후 7시에 받았는데 보완은 5월 12일 새벽 5시까지 달라고 합니다. 근데 5월 11일에 부득이하게 다른 스케줄이 있다면 결국에는 메일 받은 5월 10일 오후 10시쯤부터 보완내용을 보고 수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포괄임금으로 계약했던 저로서 결국 공짜 야근을 하게 된 셈입니다. 꼭 이런 심사 관련 이슈가 아니더라도 만약에 해외 제조사와 연락을 해야 하거나 하는 일이 있다면 결국 해외에 있는 갑들의 시간에 맞추는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분들은 한국의 담당자 사정은 안중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단점 2. 업무에 대한 고객업체의 낮은 관심, 수준 및 비협조적인 태도 (외주업무의 문제)

고객업체들은 인허가 업무라는 게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RA에 대한 인식이 개차반인 제조업체에서, RA 이외의 부서(개발, 영업 등)에서 볼 때 인허가 업무는 그저 RA 부서해서 해야 하는 서류업무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더해 더욱 심각한 사실은, 고객업체의 RA담당자들도 자신의 업무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점입니다. 시험 접수 시 시험 신청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기술문서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어떤 시험을 해야 하는지, 기술문서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등 경력이 3 년 이상이나 됐는데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모르는 분들을 비방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분들이 자기만의 얕은 지식과 기준으로 컨설팅업체의 담당자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거나 따지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굳이 문서에 이런 내용 안 들어가도 될꺼같은데 꼭 넣어야 하나요? 왜 넣어야 하나요?',  '이런 시험은 시험은 꼭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시험 안 하면 안 되나요?', '보완사항에서 말하는 이 내용은 ~~ 한 내용인 거 같은데 그렇지 않나요?' 라면서 말이죠. 

 

 

물론 어느 정도 합당하고 논리가 있는 주장이면 저도 고객업체 RA담당자와 설왕설래를 하면서 제가 알고 있는 지식도 정리하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프로젝트 일정을 지연시키고, 불필요한 중복업무를 하게 만드는 원흉이 됩니다. 만약에 여기서 '네네~' 하고 고객업체의 말을 들어주다가 일정이 틀어지거나 허가를 받지 못하게 되면 결국에는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하게 됩니다. '컨설팅 괜히 썼다는 말' 말이죠. 'X-RAY 장비의 세척 프로세스에 대한 밸리데이션 보완' 이 '세척 이후 기기 도장면의 부식에 대한 검증 자료 제출'을 의미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쪽으로 이해해보려고 해도 아니지 않나요?

 

 

'컨설팅을 맡겼으니 너네가 알아서 해'라는 인식 또한 업무를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기술문서 작성을 하다 보면 기술적으로 확인이 필요한 내용이 있는데, 고객업체 연락선(담당자)에게 연락하면 자기는 기술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R&D에 물어보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그래서 고객업체 R&D 담당자에 물어보면 이 내용은 잘 모르는데, 자기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꼭 필요한 거냐고 되뭍습니다. 결국 수많은 자료 검색하고 기술적인 내용 파악해가면서 결국 R&D 담당자에게 원하는 자료를 받아내는 데 성공은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번에는 제가 생각했을 때 R&D에 물어볼만한 내용이라서 그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을 했더니, 이거는 RA담당자가 맡아서 하기로 했다면서 그 사람한테 물어보라고 합니다. RA담당자한테 물어보면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R&D 담당자한테 물어보고 연락 주겠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또 어떤 기가 막힌 고객업체는 아예 개발부서랑 RA담당자랑 사이가 안 좋은지 서로 담당자들끼리 필요한 물어봐가면서 해도 될 것을, 자기들끼리 소통도 안 하고 아예 제가 가운데에 껴서 내용을 대신 받아서 전달해주고 하는 웃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 무슨 업무를 하는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말을 섞기 싫으니깐 발생하는 촌극입니다. PM이 프로젝트 따온 사람으로서 잘 중재를 하고 그래야 하는데 자기도 '을' 이니깐 '정'인 저에게 그냥 떠넘겨버립니다. 이러면 업무는 업무대로 진행이 안되고,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쓰게 됩니다.

 

 

이러면 결국에 독박은 컨설팅업체 실무자가 뒤집어쓰게 됩니다. 아무리 컨설팅업체라도 해도 기술문서 작성에 필요한 자료 제공, 작성, 검토 등은 일부 고객업체에서 수행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컨설팅업체가 IEC 60601-1 규격을 잘 안다고 한들 기구, 회로 설계자들보다 잘 알까요? 제품에 설계된 안전 기능들, 외장부 재질, 난연 등급, 소프트웨어 기능, 보안설계내용 적용 여부 같은 세부사항들은 제품의 기획부터 개발까지 직접 참여한 고객업체 개발자들만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기술문서 및 첨부문서 내용에 들어가야 하는데, 개발자들도 격무에 시달리니 대부분은 인허가 관련 자료를 달라고 하면 '꼭 필요한 거냐? 전에는 이런 거 없어도 됐는데 왜 달라고 하냐' 라거나 열심히 요구사항 정리해서 전달한 내용 무시하고 대충 작성해서 줍니다. 이 또한 나중에 가서는 보완을 받게 되어 이중작업을 하게 되는 요인 중 하나가 되죠.   

 

 

 

쓰다 보니깐 내용(불만)이 길어져서 다음 글에 나눠서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